Job/직장생활이야기

[직장생활이야기] 19살에 입사해서 30살에 백수되다 - 마지막편-

vivienloves 2020. 5. 28. 18:11

"승진을 한다는 것"




우여곡절도 많았다. 

그 과정을 모두 견디고 처음 승진했을 때도 

기억이 나지만 


첫 직장에서 

마지막으로 승진했을 때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고졸의 승진 기준은 조금 다르다.

11년 4개월을 한 회사에 

근무했지만 퇴사할 때 

내 직급은 고작 주임 이었다.



내가 대학에 진학하지 않고 

취업을 선택한 이유는 

집안이 대학 갈 형편이 되지 않아서

내가 대학 갈 성적이 되지 않아서

모두 아니다.


딱히 대학에 진학해야 하는 

이유를 모르겠어서 

내가 가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우리 집은 

개취존(개인 취향 존중)

응, 너 하고 싶은 거 다 해 

분위기였지만 

내가 집에 맏이이다 보니 

처음에 대학은 가야 한다고 하다가 

나중엔 그래 네가 선택한 거니 그러라고 하셨다.



회사 특성상 

여러 직군들이 모여 있는 회사다 보니 

학벌의 진급 차이가 

눈에 보일 정도로 티가 났다.


그때 처음으로 

대학에 가서 무언가를 전공하지 

않은 것에 대해 몹시 후회했다.

자존심이 상했기 때문에 

.

.


그렇다고 무시한다거나 

그런 분위기는 절대 절대 아니었다.

오히려 경력을 더 인정해주는 분위기


그래서 였을까

20대 후반에 들어서서는 

상무님 한테도 내 할 말은 반드시 전하는 

당돌하기 그지없는 모습이었다.


20대 중반쯤 

갑자기 우리를 이끌어 주던 

제일 큰 언니가 퇴사를 했다.


그 전에는 내 위로 

언니들이 많아 내가 그 자리에 

앉게 될 거라고는 상상도 해본 적 없었다.

더군다나 제일 큰 언니의 임무는 

엔지니어의 업무 백업과

여사원들 관리 담당으로 

교대에서 나와 주간 근무만 하기 때문에 

결혼해서도 충분히 다닐 수 있는 조건으로 

언니들이 퇴사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


그. 런. 데


사람일은 모른다고 

순식간에 언니들이 다 퇴사하고 

생뚱맞게 내가 제일 큰 언니가 되어 동생들을 

이끌어 가게 된 것이다.


다른 팀 언니들에 비해 

나이도 너무 어렸고 

 그 전 언니들이 너무 잘 해왔던 터라 

내가 언니들만큼 잘할 수 있을까?

하는 부담감에 미칠 것 같았다.


무엇보다 내가 앉고 나서 

엉망이 되었다는 소리를 듣게 될까 봐 

그게 제일 두려웠다.


나름 업무에 대한 자부심이 있었기에 

잘 해내고 싶었다.


그런데 자리에 앉고 

일주일 후 타 팀 엔지니어로부터 

메일이 한통 왔다.


여사원들 검사하는 방식이 

미덥지 못하다는 내용이었다.

내용은 매우 돌직구였다.


메일 수신인을 확인하니 

나뿐만이 아니라 관련된 팀들이 

모두 포함되어 있더라 

순간 눈물이 터져 나왔다.


그때부터 시작이었다.

큰언니가 된다는 건 

동생들을 이끌고 간다는 건 

뭐가 됐든 우리 part에서 일어나는 문제는

전부 내가 수습해야 한다.


나와 우리의 담당 엔지니어는

(지금부터 담당 엔지니어는 내 상사로 칭하겠다.) 

한동안은 이리저리 불려 다니며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며 다녔다.


내 상사는 내게 말했다.

"내가 회사에 일하러 출근을 하는 건지 

너네 뒤치다꺼리를 하러 출근을 하는 건지 모르겠다."

그때도 난 죄송했다.


어려서부터 회사에 입사 한 

여사원들이 많은 회사에는 별의 별일이 다 있다.

여사원들끼리 싸움은 물론이고 


이게 회사에서 일어났다고는 

믿을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다.


그 이후에도 

나는 몇 번은 더 이리저리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던 것 같다.


그날도 

타 팀 언니한테 불려 가 

전날에 이런이런 문제가 있었는데 

*&%&%&(&(%%###

듣고 있다가 문득 생각이 들었다.



.

.


근데.. 우리 애들이 도대체 

 잘못한 거지?

잘못한 게 딱히 없는 거 같은데?


한 공간에 오래 묵혀있던 

고인물들은 새로운걸 잘 못 받아들이는 

그 무언가가 있다.


불편한 게 있어도 그게 딱히 

불편한지 잘 모른다.

처음부터 계속 그 방식으로 해왔기 때문에 


나 역시 고인 물 중 하나였다.

그래서 우리가 어리니깐 

어린애들이 그런 거라 잘못했구나 라고 생각했었나 보다 


하지만 

옳고 그름의 문제는 

나이와 상관없다.


인생을 더 살았다고 해서 

그 사람한테만 배울 점이 있는 건 아니다.

동생들한테도 배울 점은 무수히 많더라 


우리는 뭉치기 시작했다.

동생들의 생각 , 의견을 듣고 

타당하다 생각되는 건 과감하게 적용하고 

개선하고 업무에도 우리들의 목소리를 

적극적으로 내기 시작했다.


나 역시 

더욱더 성장해나갔다.

그래야 나를 인정해주고 내 말을 들어줄 테니깐


그렇게 우리는 

우리들만의 방식으로 힘을 키워갔다.

(나중에는 건방지기 짝이 없을 정도로)


당시에는 우리가 짱 

이 구역 우리가 접수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우리 좀 쵝5인듯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나를 불러내 혼냈던 타 팀 언니한테 가서 

내가 따질 수 있을 정도로 커졌으니 

얼마나 성장한 것인가


지금 생각해도 

당시에 나를 잘 따라준 동생들에게 고맙다.


하지만 

회사생활 어디 그리 만만한가




남들은 대부분 한번 팀이 정해지면 

퇴직할 때까지 같은 팀 이겠지만 


나는 11년 동안

무려 4번이나 팀 이동이 있었다.

개인 이동이 아니라 

part 전체 이동이었다.


3번째까지는 견딜만했다.

하지만 4번째에서는 더 이상 지쳐서 못하겠다는 말이 

저절로 나오더라 



대부분 팀에서는 

여사원들을 딱히 반기지는 않는다.

손도 많이 가고 말도 많이 나오니까


혼자 옮긴 것도 아니고 

part가 옮긴 건데 뭐가 그렇게 지쳤냐고들 

할 수도 있겠다.


내 위에 받쳐주고 있는 

누군가가 있었으면 나도 아직 

회사에 남아 있었을지도 모른다.


팀 이동이 있을 때마다

"우리는 잘 모르잖아 

네가 지금까지 이끌었으니깐 

앞으로도 너가  이끌어가 줘"


그렇게 마치 내가 팀장인 것처럼 

알아서 다 할 정도였다.


회사생활을 하다 보면 

윗자리가 탐날 때도 있다.

탐나야 한다. 아니 탐내서 차지해라 

그래야 본인이 성장할 수 있으니 


하지만 

올라가서 월급만 받아가면서

일은 밑에 애들한테 다 맡기고 

놀 생각으로 차지하려는 거라면 

애당초 때려치워라 


사람을 이끌어야 하는 

자리를 맡아보니 본인이

맡은 바 제대로 하고 있다면

그 자리는 결코 

쉬운 자리가 아니더라 


또 그런 생각도 든다.

내가 비켜줄 때가 온 거 같다.



많은 팀장을 스쳤지만 

개인적으로 가장 기억에 남은 팀장은 

4번째 팀에서 만난 팀장님이자 상무님이었다.


몇 년 만에 느꼈다 

팀의 소속감 

그리고 인정해 주셨다.

나의 존재감 

내가 지금까지 버텨주어 이만큼 올 수 있었다고


처음이었다.

내가 팀원이 되자

그간 나의 회사생활에 대해 

그간 나의 업무 행적에 대해 세세하게 

확인하고 나를 면담하신 분은 그분이 처음이었다.


왜 이렇게 멋있는 분을 

이제야 만났나 할 정도로 

내가 봐온 리더 중 진정한 리더였다.


체구는 작지만 자체에서 

뿜어져 나오는 사람을 압도하는 카리스마

재치도 있으시면서 

너는 내 사람이다 라는 확실한 소속감을 심어주신 분

진정한 어른이란 이런 거구나 라는걸 

몸소 보여주신 분  


일을 어떻게 해결해나가면 좋을지 

아무리 머리를 굴려도 모르겠을 때 

팀장님을 만나면 상상도 못 했던 해답이 나왔다.



팀장님이 기억에 남는 3가지가 있다.


1. 팀원과의 대화 내용 메모 

2. 말뿐이 아닌 행동

3. 상사가 아닌 인생 멘토로써의 조언


.

.


팀장님을 조금만 더 일찍 만났으면 

달라졌을까?


퇴직 면담을 할 때 마지막 인사팀까지 

총 4명과의 면담을 거치는데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다가 

팀장님이랑 면담할 때 1시간 넘게 

대성통곡을 했더랬다...

.

.


나는 그렇게 첫 번째 회사에서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만난

진심으로 존경한 분의 사인을 퇴직서에 받고 

11년 4개월의 마침표를 찍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