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만나 본 8개월간의 휴가
" 뭐부터 해볼까"
퇴직서를 쓰면
영화 쇼생크 탈출의 한 장면과 같을 줄 알았다.
탈출하는 기분일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무언가
먹먹한 감정은 올라 오더라
.
.
나는 지나간 일에는
미련을 두지 않는다.
원래는 이런 성격이 아니었는데
정말 좋아했던 사람한테
대차에 까이고 나서부터
무언가에 뒤돌아 보지 않는다.
돌아보는 순간 구질구질해진다는걸 그때 알아버렸다.
마음을 함부로 주고
함부로 틀키는 성격이라
그런 건 내 맘대로 되는 게 아니라
어쩔 수 없지만
그게 뭐가 됐든
줄때 줘버리고 떠날 땐 뒤도 안 돌아보고
떠나버린다.
(TMI)
음 ...됐고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자, 인생 첫 백수가 되었으니
이제 뭐 부터 해볼까
나는 회사 다니면서도
틈틈이 여행을 다녔다.
중간중간 힐링타임은 필요한 것 같다.
퇴직금도 들어왔겠다.
곧 있음 동생도 방학기간이겠다
(남동생이 하나 있는데 암스테르담에서 유학 중이다.)
가족들과 호주 여행을 준비한다.
아빠는 회사 때문에 못 감ㅠㅠ
사실 호주가 썩 당기진 않았지만
동생이 자연을 보고 싶다나 뭐라나
그래 누나가 쏜다
가자!!!
처음이었다.
항상 여행을 가도
처음에야 신나서 떠나지만
끝나갈 때가 되면
출근할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생각에
놀면서도 계속
출근하는 생각을 하곤 했는데
여행이 끝나도
나는 계속 놀 수 있다!!!
그렇게
엄마, 동생과 함께
시드니, 멜버른, 브리즈번을 여유롭게 둘러보고
커. 잘. 못
(커피 맛 1도 모름)
커. 잘. 못이
커피 맛이 이런 거구나 라는 걸
알게 된 나라
오페라하우스에서
찐 오페라도 보고
언제 내가 그 유명하다는
오페라 하우스에서 오페라를 보겠는가
(영어로 공연했어도 몰랐겠지만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못 알아들음)
대충 왕이 바람난 내용인 건 느낄 수 있었음
여행의 묘미는
아무래도 경험 아닐까
나는 또 여행 계획을 세운다.
최근 다녀왔던 여행지 중에
가장 좋았던 곳을 다시 가보고 싶었다.
나는 여행을 다닐 때
같은 여행지를 두 번
많게는 세 번까지도 다녀온다.
한번 다녀와서는
그 나라의 매력을 다 알 수 없기 때문에
처음 갈 때는 그 나라의 문화와 역사에 대해 익히고
두 번째에 가서는 그 나라를 온전히 느끼고 온다.
그렇게 두번째 여행지로
내가 정한 곳은
크로아티아
물론 주변 국가들도 너무 매력적인 곳이
많았지만 온전히 크로아티아만 느끼고 싶었다.
여행은 항상 엄마와 함께하기 때문에
크로아티아 여행은
엄마와 둘이 출발
크로아티아 여행은
말 그대로 정말 휴식 그 자체였다.
그동안 고생한 나에게 주는 선물
자그레브, 자다르, 스플리트, 두브로브니크
모두 아무 생각 없이
멍 때리며 쉬기에 딱 좋았다.
첫 번째 크로아티아 방문 때는
크게 느끼지 못했는데
두 번째에 가니 사람들도 너무 친절하더라
이번 여행도 역시
부담 없다.
돌아가서도 난 백수니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너무됴아 너무됴아
워낙 활동적인 성격이라
나는 집에서 놀면 좀 쑤셔
3달도 안돼서
내가 알아서 나갈 줄 알았다.
근데 이게 웬일?
백수 너무 나랑 잘 맞아
내 적성에 딱 맞아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한 달을 집 밖으로 안 나간 적도 있다.
그렇게 빈둥빈둥거리기를 8개월
아마도 통장에 여유가 있었기에
가능한 일 아니었을까
전시회 , 공연도
원없이 보러 다녔다.
계획 없이
그날 그날 눈뜨고 나서
하고 싶은대로
의식의 흐름대로 살았다.
꾸준히 기숙사 생활을 하다가
본가에 들어가 살면
불편할 줄 알았는데
너무 편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거기다가
엄마, 아빠한테 허락도 받지 않고
강아지까지 한 마리 더 데려와
아빠가 난리가 났었더랬다.
(이미 10년째 푸들 한 마리를 키우고 있었는데
또 데리고 옴^^)
그렇게
강아지와 나까지 모두 받아준
우리 엄마, 아빠
정말 걱정 없이 놀았다.
백수라는 게 두렵지 않았다.
이러다가 취업을 못하면 어쩌지?
라는 불안감도 없었다.
"될 대로 돼라"
그동안 고생했으니
아무 생각 없이 1년 정도는
놀아도 되겠지
놀자!!!
나는 딱 1년만 놀다가
이직에 뛰어 들 생각이었다.
그런데 퇴직한 지 8개월째
거실에서 강아지들과
던지기 놀이를 하고 있는데
아빠가 아무 말도 안 하다가 갑자기
" 너 정말 찌질이 같다"
그 한마디가
나에게는 너무 충격이었다.
그랬다.
아빠는 봐주고 있었던 것이다.
나만 속 편하게 놀고 있었던 것이다.
나이는 30이 됐고
한창일 나이에 집구석에 박혀서
강아지들만 끼고 있는 모습이
엄마, 아빠 눈에는 그렇게 한심해 보일 수가 없었던 것이다.
순간 너무 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졸업 후 집에 손 벌린 적이 있던가
오히려 동생 유학비에
집안에 돈 필요할 일이 있으면
다 해결해줬는데
그 날
아빠랑 엄청나게 싸운 기억이 난다.
나도 안다.
시집도 가야 하는데
요즘 누가 백수를 만나주겠는가
거기에
요즘 세상 어디 그리 만만한가
학벌 좋은 애들도
취업 못해 난리라고들 하는데
학벌도 뭣도 없고
젊디 젊은애들도 취업못해 놀고 있는데
나이도 먹을 만큼 먹은
우리 집 딸이
도대체 뭘 믿고 저렇게 천하태평 한가 하셨을 거다.
그리고 그 날
바로 노트북을 펼쳤고
내 인생 두 번째로 이력서를 넣은 회사에
아빠 보란 듯이 이직에 성공했다.